용화사 약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용화사 약력

HOME  >  용화사 약력

용화사는 1998년 광주서 기인되와 2001년 나주와서 태어났네. 법은 진법 질머졌는디 東 學(동학)에 증산법이네. 天地人(천지인) 삼합지고 儒佛仙(유불선) 삼합지고 仙佛儒出(선불유출)이 되었으니 증산도가 탄생했네.

  • 성명 - 洪正男(홍정남), 일명 炅植(경식), 道號(도호)道領(도령), 法號(법호)海恩(해은)
  • 생년월일 - 1940년 7월 11일 庚辰生(경진생)
  • 출생지 - 나주시 평산동 용화사 근처 장유서 탄생했고 무식에 지리학자네.

동양에 성출은 무식이 법이 맞고 이 세상이 겁살풍 지나가고 나면 무식에 도로 농사 짖네. 法理之生(법리지생)이 通(통)이라.

나는 평생 법리 생각하고 살다가 得道(득도)에 이르게 되었네. 글은 배운 디 없고 글 읽어 본 것은 증산 경전 서너번 읽어 본 일 밖에 없고, 어려서 한문서당 서너 철 다녀본 경력이 전부네. 학교문은 발 디더 본 적이 없고 道(도) 닥거본일은 없으나 유명한 선생 한분은 모셨네. 그 분이 누구냐. 고창 통훈사 라는 창건주 김홍현 이시고 아호는 진암 이시네. 내 평생 선생으로 바뜰어야 쓰것다 허신분은 이분 한분이고 그 외는 저분 선생으로 모셔야 쓰것다 한 사람은 발견을 못했네.

그 밑에 들어가 道學(도학)공부를 허는디 설법 백여 차례 들은 일 밖에 없네. 설법을 듣는 디 개 바우 지나가는 소리 퉁퉁허고 지나가며는 되씹은일 없고 설법 끝나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을 못헐 정도 였네. 그 분도 공부한 역사가 없는 분이고 그 무식헌 양반이 法理(법리)로 설법을 허는디 문자는 문자는 다 동원해 쓰니 누가 무식이라 안코 부러서 말하면 수십만 제자가 뒤 따랐네. 나는 수제자 축에 끼지도 못허고 뒤로 맴돌다가 그 분 작고 허시고 고창 道家(도가)가 문 닫게 되었네. 나는 광주나와 형편상 사업을 했네. 사업은 쓰레기 사업 버스 타이어 재생 사업을 허는디 下人(하인)들 상대허고 한 10년 세월을 보내는디 一夜(일야)에 선몽이 있었네. 니가 미륵 유사를 마터라 그 말 듣고 깨보니 꿈이라. 천지에 감사 드리고 이 일 해내기로 작정허고 사업을 멈추고 道(도)에 발 딛기 시작했네. 유명세를 탈라면 멋인가 기적가튼 것이 있어야 허것는디 평소에 賤人(천인)으로 살았으니 콩으로 매주를 쓴닥해도 내 말 믿을 사람없고 궁리끝에 회문산 五仙圍碁(오선위기)를 차잤네. 회문산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오선위기가 나를 반기듯이 내 앞에 서있는 것이라. 그 穴이 나를 마지해 들이니 穴心(혈심)에 들어서 좌우산세 둘러보니 五仙(오선)이 둘러 안잤고 나 섰는 자리가 바둑판이 분명허데 그 자리 구득하여 入山(입산)허는디 동네 어르신들께 술 한잔 대접허고 入山(입산)했네. 이 穴(혈)이 무슨 혈이냐 신선이 바둑 뒤는 자리 後天(후천)탄생지지가 아닌가. 彌勒出土之地(미륵출토지지)라. 四山(사산)이 土局(토국)이데 이 穴(혈)보고 놀랜 것은 辰戌丑未土局(진술축미토국)지고 子方 (자방)에 있는 산이 바둑뒤는 형국 뒤에서 구경허는 산 아닌가. 미륵 경전에 있는 말 그대로데 그것을 보고 탄복했고 또 다른 이유는 穴前(혈전)에 미륵교가 3橋(교)가 설치되었으며 멍예 하나가 수구에 노여있고 穴前(혈전)에 미륵불 하나가 서있데. 그것을 보고 미륵님 오실 명당이 분명 허구나 작심허고 道(도)를 펴는디 一夜(일야)에 또 선몽이 있었네.

삼일삼야 불면 불휘를 해라. 이 일이 무슨 일인고 곰곰이 생각 끝에 3일 금식에 들어갔네. 2일금식 끝에 이상한 증후가 있었네. 내 몸이 하늘로 나르는 기분이 생기더니 나한테 이르는 소리가 도통은 行理之通(행리지통)이다. 別通(별통)없다. 이 말 한마디 던져주고 금식을 멈춰라. 2일만에 금식이 끝났네. 금식을 끝내고 몸을 달아보니 5킬로가 빠졌네. 그 후 몸에 병은 다 달아나고 行理之通(행리지통)이 무엇인고 곰곰이 생각 끝에 병든 친구들 모아 노코 병 고쳐준다고 3일 금식수련이 시작되았네. 다행이도 내 법 따른 사람은 병이 다 났고 오늘에 이르렀네. 오늘에 이르러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조상 덕이데 용화대도 하나 건설 해낸 것이 명당 안 덕도 있제마는 회문산에 묘 쓰고 조상음덕 아닌가. 다시 말하면 회문산 오선위기는 聖出之地(성출지지)가 분명허네. 구사한문아닌가. 나는 山理(산리)를 배운디는 없어도 15세에 地理(지리)를 自解自得(자해자득)으로 깼네. 사람은 누구나 선영이 크고 道(도)는 地理得道(지리득도)가 크네. 이유는 天理(천리)는 地理(지리)에 있기 때문이네. 지리라 하는 것은 私(사)가 없네. 성출지지 쓰면 성인났코 역적지지 쓰면 역적나니 도는 지리득도가 큰가 용화사 터로 말하자면 호남에 大水口(대수구)지고 물명당 이네. 삼천리 금수강산 水氣(수기) 다 모아든 자리 아닌가. 이 터가 아니면 후천 미륵이 水氣(수기) 짊어지고 지상에 못 나터나네. 선천 불기운이 얼마나 쌘가 이 터 잡어들 때도 광주서 법 짖는디 나주 고향으로 내려가거라. 수차 선몽이 있었네. 그 결과 行理之通(행리지통) 다 이행허고 오늘날 용화사가 탄생했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겪어 온 이야기 구구절절 다 설명허자면 책을 100권은 무어야 허네. 다 생략하고 내 평생 장유서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간략하나마 대필했네. 사회 모든 사부대중 여러분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바라네.

내 삶은 야산초에 매화라고나 할까. 바위틈에 난초라고나 할까. 들 국화라고 할까. 竹田(죽전)靑竹(청죽)같이 살아왔고 湖南水口峯下(호남수구봉하)에 大穴作(대혈작)이라 용화사가 들어섰으며 戊己宮殿(무기궁전)은 법에도 있고 王權設置(왕권설치) 道德宗敎(도덕종교)가 났네.

Copyright © 용화사. All rights reserved.